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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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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남녀무늬 항아리*

김일하 시인

기사입력 2022-11-2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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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남녀무늬 항아리*

 

                                        김일하 시인

 

나는 이제 흙이 되기로 하네

흙이 되어 목이 긴

저 민무늬 대문을 열고 들어가

별빛보다 먼 여행을 할 것이네

그리하여 전생 이전의 전생

내가 살던 마을에 당도하면

한 줌 고운 흙으로 당신을 빚을 거네

몇 밤이고 사랑하며

눈이 맑은 아이도 낳을 거네

흙의 후예들이 대추알처럼 자라나고

마침내는 거룩한 계보의 일가를 이룰 거네

당신과 나 흙으로 빚은 꽃잎을 지져먹고

마주하여 끝나지 않을 춤을 추며

별빛보다 먼 여기까지 되짚어 올 것이네

그리하여 어디 옛터에서 출토되면

목이 긴 시대의 태평한 역사가 되어

민무늬 속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남을 거네 

박물관 유리벽 너머 토우를 닮은 남자

숨소리까지 음각하여

다시 별빛보다 먼 여행을 할 것이네

 

나는 다시 흙이 되기로 하네

 

 

경주국립박물관에 전시된 7세기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민무늬에 남자와 여자의 모습이 1차원적으로 음각되어 있다.

 

 

 

詩作노트

 

  오래 전 경주박물관을 관람하던 중 시선을 붙잡는 토기 한 점을 봤다머리는 동그라미몸과 팔다리는 작대기처럼 찍찍 긋고 치마는 삼각형으로 표시한 남자와 여자가 [춤추는 남녀무늬 항아리]라는 제목(이름)으로 음각되어 있었다날카로운 것으로 아무렇게나 새긴 듯한 모습으로……그림을 보는 순간 충격과 환희에 휩싸인 나는 저 속으로 들어가면 천 오백년 전의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 한참을 그 자리에 붙잡혀 있었다.

 

  경주여행 내내 춤추는 연인을 생각하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글을 쓸 준비를 했다낡은 초가가 보이고 사립문이 보이고 남자와 여자의 행복에 찬 미소가 보이는데 도무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경주박물관에 전화해 보고 대학교 사학과에도 전화해 보았지만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며칠에서 몇 달해를 넘기며 한 줄도 춤추는 연인을 엿보지 못하는 시간이 흘렀다결국 이건 시가 될 수 없나?’ 포기에 가까운 방치에 이르렀다.

 

  7~8년 동안 지지부진하던 어느 날,‘흙이 되어 저 연인을 살고 싶다.’생각하며 항아리 속 세상으로 걸어 들어갔다흙으로 사랑을 빗고 눈이 맑은 아이를 낳고 함께 춤추며 일가를 이루어 살다보니 어느새 나는 박물관 토기 앞에 다시 서 있었다믿을 수 없을 만큼 벼락같이 가 왔다오래 속앓이를 한 글이지만 항아리 속 연인처럼 천 년을 기다리면 어떠랴내게 와서 다시 천 년을 살아준다면……생각했다.

 

  이제 저 연인 중 하나는 나이고 하나는 나의 사랑이다민무늬 대문을 밀고 들어가 나는 다시 천 년을 살 것이다.

 

 


김일하 시인

 

한국작가회의 회원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공무원문예대전 은상

김미경 프리랜서기자 (iybc365news@naver.com)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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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0
  • 꽁이
    2022- 12- 02 삭제

    멋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