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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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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흙

권자미 시인

기사입력 2022-12-26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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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흙

 

권자미

 

 

젊어서 농사꾼이던 아버지

밭에서 신발 벗으시던 아버지에게

따뜻한 흙 이불 덮어 드리고 흑흑 소리를 죽였다

상복 치맛자락 뒤집어 코 풀며

흙빛 얼굴로 통곡하였다

 

누군가 흙으로 돌아갔다 했다

돌아갔다는 말은 애초부터 흙이었다는 것

 

나무에게 흙 장화 신기고 나무바다 무자치

흙 베개 고이고 다 자란 풀에게도 흠뻑 젖 한통

물리고마는 집요한 흙은 그들의 성역

스미지 않는다면 흙도 죽음을 받지 않는다

 

슬퍼마라

새끼 흑염소들이 뜯고 있는 풀을 보라

어떤 영혼은 짙은 초록으로

어떤 영혼은 빨강 노랑으로 희거나 분홍으로

줄지어 돌아오고 있다

 

열무도 흙이 기른다

시장한 우리는 밥상에 둘러앉아

푸성귀가 맛나다며

연초록 아버지를 양푼에 비벼 먹었다

 

녹음이 우거진다는 말은

얼마나 두렵고 지독한 말이냐

 

 

詩作노트

 

산 밑에 비탈 밭을 마련하고 나는 좋았다.

 

무엇보다 밭에 앉아 동네를 내려다보는 일이 좋고, 이른 봄 아무것도 심지 않는 땅의 속살을 보는 것이 좋고, 그 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좋다.

 

콩을 심었더니 콩이 나고 팥을 심었더니 팥이 나고, 그 불변의 법칙에는 틀림없는 진실이 존재하지만 농사의 진정한 기쁨, 그 기쁨을 넘어선 신비, 경험한 사람만이 알게 되는 그 무엇이 내게로 왔다.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있을 때 등으로 업히는 봄 햇볕의 따스한 온기와 땅을 파는 호미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흙에 닿는 맨발의 부드러운 감촉이 좋다. 비탈 밭에 앉아 잔돌을 고르는 동안 젊어서 농사꾼으로 사신 아버지와 들로 산으로 쏘다닌 나의 유년이 수시로 불려왔다.

 

호미를 놓고 밭고랑에 누워 눈을 감으면 흙이 주는 편안함과 코끝을 스치고 가는 바람 냄새와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산새 소리에 마음은 한없어져 고인 물처럼 고요해지고 종내에는 산새들의 목소리를 일일이 알아들었다.

 

내가심은 옥수수와 감자도 새들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 먼 캄캄한 땅속에서 길을 찾아 지상으로 오는구나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렇다면 무덤에 드신 아버지도 저 산새 소리에 귀가 예민해져 지상의 많은 소음 가운데 내 목소리를 귀신같이 골라 듣지 않을까 싶다.

 

아버지 그 견고한 유택에 문이 없어 출입을 못하는 것이라 여겼는데, 봄이 오면 어김없이 무덤 위에 돋는 푸른 잔디와 패랭이꽃과 모메꽃 한 송이가 아버지의 대답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감자는 감자의 음성으로 대파는 대파의 음성으로 저마다 그 대답은 시간 차이를 두고 가만가만 들려오지만, 대게는 지하로 가신 모든 영혼들이 초록으로 불려 오는 것이다.

마중하지 않아도 초록으로 와서 사랑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희거나 노랑 분홍 빨강의 꽃으로 웃는 것이다.

 

나는 우둔하여 알지 못하고 여름날 양푼에 풋나물을 뜯어 참기름과 고추장으로 쓱쓱 비벼 아이들과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아버지를 먹었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악 하는 비명을 양손으로 틀어막고 언친 가슴을 쳤지만 흑흑 새나오는 울음은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초록이란 얼마나 두렵고 지독한 것이냐나의 시집 지독한 초록은 그렇게 세상에 왔다.

 

권자미 시인


2005년 시안으로 등단

시집으로 지독한 초록이 있음

김미경 프리랜서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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