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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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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분의 시어머니를 모셨던 종갓집 맏며느리 이야기

시아버지의 지극한 사랑이 저를 지켜주셨어요

기사입력 2024-03-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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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순 어르신은 8년째 운문2리 노인회장을 맏고 있으며, 78년된 고택에서 54년째 살고 있다. 그 시절 고등학교를 나온 어르신은 막내딸로 태어나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24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선을 보게 되었으며 시집갈 생각도 없었던 김분순 어르신은 닷새 만에 약혼식을 하게 된 것이다. “부모님께서 지금 시집 안 가면 처녀로 늙어 죽는다며, 그 집이 동네에서 최고로 부자고 선비 집안이고 배운 집안이라며 나를 꼬셨어요. 그래가지고 할 수 없이 선보고 닷새 만에 약혼식을 했어요. 그리고 신랑이 철없는 학생이었는데, 신랑 군대에 가기 전에 한 달도 안 되어서 여름에 결혼식을 했지요.”
 


김분순 어르신


임 씨 문중 종갓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온 김분순 어르신은 시어머니가 네분이었으며, 시동생 여섯에 시누이가 일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며느리를 아껴주고 예뻐해 주는 시아버지 덕분에 지금까지 54년째 임 씨 문중의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 시집을 오니 시어머니가 네 분인 집안에 시동생 시누이 많고 신랑은 농땡이지 살수록 고생인 거야. 시집와 마당에 한가득 동네 애들이 모여 있는 줄 알았는데 집에 다 안가고 이상하다 했는데 그게 다 우리 시동생이여.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들이 와있는 줄 알았는데 시어머니가 그렇게 많은 줄 알았는가 알았으면 안 왔지 저 할마이들이 왜 해가 져도 안가나 이랬거든. 막내딸로 귀하게 자랐는데 좋게 보낸다고 보낸 것이 이렇게 됐어.”



김분순 어르신은 평소 아껴주시던 시아버지의 사진을 아직도 방안에 두고 있다


김분순 어르신은 두 분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는데, 종갓집 맏며느리로 큰 살림을 해내느라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신랑이 결혼 후 석 달 만에 군대에 가버리고 어르신은 혼자 남게 된 것이다. “귀하게 자라며 아무것도 모르고 시집을 와 솥은 이따만한 게 얼마나 무겁노. 내가 시집오니까 막내 시동생이 초등학교 일학년이야. 시동생들 쪼막쪼막했거든. 부자집 아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시동생들도 별났어. 참 많이 힘들었지요. 그래도 시아버지가 많이 도와주고 일 시키지 말라고 하시고 그랬지요. 시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귀히 여겨주고 이뻐하고 아무것도 못 하게 하셨지요. 신랑 석 달 만에 군대 가고 없는 며느리에게 조선에 없는 시아버지였어요. 시아버지 때문에 살았어. 아니면 안 살고 갔어. 내가 안 살고 열 번도 더 갔어.”



김분순 어르신이 54년째 살고 있는 고택의 모습


김분순 어르신이 남편보다 더 의지하며 살았던 시아버지는 82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지금도 어르신의 안방에는 남편 사진 대신 시아버지 사진이 놓여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보던 책과 물건들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동네 사람들도 우리 집에 와 시아버지께 글 배우고 아이들도 글 배우고, 우리 아버님은 글 쓰고 맨날 책보고 선비셨지요. 술도 안 드셨어요.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몸져누우셨는데, 시어머니가 시아버지 방에 안 가니 내가 시아버지 방에서 2년을 함께하며 병시중을 들었어요. 고생도 많았지만, 시아버지 사랑 덕분에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지. 그분만 생각하면 마음이 참 좋아요. 내 방에 남편 사진은 없어도 시아버지 사진은 항상 모셔두고 있지요. ”




 

 

김미경 프리랜서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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