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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잊혀지지 않게, 제발 도와주세요

故권미란팀장의 유가족의 애끓는 심정 토로

기사입력 2025-01-1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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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시위를 할 때에는 시위를 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까이 가 들여다보면, 감당 할 수 없는 억울한 사정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풍기에서 과수원을 하고 있는 송인제씨는 12월 초부터 시청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처음 1인 시위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가족과 친척, 지인들이 함께 해주고 있다. 추운 겨울날씨에 길 위에 서서 온 몸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고자함이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권미란씨를 위해 남편 송인제씨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2024. 11. 02.() 22:30분경 영주시 문수면 한 도로에 주차된 자동차에서 영주시청 OO과 일반민원팀장(6) 권미란씨가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다. 평소 고인은 단란한 가정의 사랑받는 아내였으며, 두 아이의 지혜로운 엄마였다. 직장생활을 하는 바쁜 가운데에도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를 살뜰히 모셨으며, 서울에서 대학을 나와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아들과 딸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보내는 것에 행복해 했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또한, 2025년 봄에는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어 사위를 맞이한다는 기쁨도 있었다. 이렇듯 가정과 직장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모범되게 살아온 엄마이고 아내이며 며느리이고 딸인 권미란씨가 하루아침에 고인이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단란했던 한 가정이 무너졌으며, 감내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가족들은 식음을 전폐한 채 절망과 괴로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는 실정이다.

 

남편 송인제씨 인터뷰
 

 

저는 제 세상의 모두를 차지했던 아내를 영문도 모른 채 잃었습니다. 아내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한없이 착하고 고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존중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세요.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테이블이 의자가 4개인데 한 자리가 비어요. 그 자리가 너무 힘듭니다. 지금도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아이들이 더 힘들어지고 고통스러울 것 같아 표현 할 수가 없어요. 지금도 현실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이 전혀 실감 나지 않아요.

 

서울에 있는 아들에게 김치 찜을 만들어 보내곤 했는데, 장례가 끝나고 보니 김치 찜이 한 개 남아 있었어요. 아내가 해준 그 김치 찜을 저희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먹었습니다. 언제나 아들에게 엄마는 참 고운 사람이다.’, ‘살면서 더 존경하게 되는 사람이다라고 말해 왔어요. 한 번도 저한테 싫은 소리 안하고 직장일로 피곤할 때도 언제나 같이 해줬어요. 제가 힘들 때마다 언제나 옆에서 저를 응원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고맙고 좋았습니다. 이 사람 웃는 모습 보는 게 제일 좋았고 어떻게 하면 웃길 수 있을까 고민해 보는 게 즐거웠었습니다. 웃을 때 표정이 너무너무 예쁘거든요. 근데 올해 들어와서 너무 힘들어 하니까 제가 직장을 그만두라고 수없이 말했어요. 상사한테 당한 거, 저한테는 몇 번을 얘기 했었거든요.

 

인도네시아 가는 비행기 안에서 과장이 짐칸에서 떨어진 노트북에 맞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와는 전혀 상관이 없던 일인데, 이 일로 아내한테 자신을 챙겨주지 않았다고 힘들게 해서 아내가 많이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그 두 사람을 제 차에 태우고 같이 왔어요. 이 사람이 그 순간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그 뒤로도 한 번씩 상사가 직원들 앞에서 힘들게 모욕적인 언사를 해가지고 견디기가 힘들고, 직원들까지도 자꾸만 눈치를 주니 스스로 자괴감이 들고 힘들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가 그 사람 못 바꾼다. 정말 힘들면 소리라도 지르던지 서류라도 던지든지 전화기라도 던지든지 뭐라도 해라.”라고 말했지만 그 사람 성품상 그걸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잊어버리고 그냥 포기하고 나와서 저랑 같이 농사지으면서 살자고 그렇게 부탁하고 부탁도 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직장을 그만두지 못한 것 나름은 이해를 했어요. 30년 공직생활을 했는데, 누군가 때문에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도 너무 비참하고, 자기의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끝난다는 것도 너무 억울해서 2년만, 2년만 더 그랬던 거지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저한테 얘기했던 것보다 더 아팠던 거였습니다.
 

아내가 어느 순간부턴가 밥을 잘 못 먹었어요. 아침에 사과 한 개 깎아주는데, 점심도 사과를 한 개 깎아 먹고 나가더라고요. 그 사람이 가족을 두고 떠나간 거 원망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어요. 너무나 고운 사람이고 착한 사람이어서 그 사람 마음을 아니까요. 그냥 단지 그 사람한테 좀 더 믿음직스런 사람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이 사람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그냥 허망하게 떠나보낼 수가 없어요. 아무 이유 없이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 알았으면 좋겠어요. 아내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하는 심정으로 1인 시위도 시작했어요. 진실을 알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저는 이 사람이 정말로 고운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사람들이 기억을 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사람 삶 자체가 사람들한테 존중받는 삶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들 송화수씨 인터뷰

 

올해 여름에 졸업을 하고 서울의 홍대 쪽에서 취업 준비를 하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11월 달에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서울에 집은 정리하고 영주에 내려와서 지금 아버지랑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힘들 때 같이 가족이 함께 해야 되잖아요. 함께 있어드리며 슬픔 나누고 싶었어요. 수시로 내려오고 있는 누나는 나름대로 이 사건을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진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지 방법들을 찾고 있어요. 엄마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는 없지만 가족이 다 엄마의 억울한 사정을 어떻게 좀 더 알리고 억울한 건 풀어주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말수가 많으신 분은 아니었어요. 다소 내성적인 분이었지만, 행동에서 묻어나오는 상냥함과 따뜻함이 있는 분이셨어요. 이번에 일이 있은 후 엄마 직장 동료들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어요. 권미란 이라는 사람은 공직 생활하면서 30년 동안 주위 사람들한테 당당하고 멋있는 밝은 여성이었다고 말씀해주셨요. 그런 모습을 존경했고 그걸 보고 힘든 시기에 힘을 얻었다는 동료분도 계셨고요. 또 힘든 와중에도 책임감을 잃지 않았던 분이셨어요. 어머니 유튜브 기록을 보면 자존감 잃지 않는 법, 말 잘하는 법, 등 끊임없이 본인에게 모자란 부분들 채워가면서 맡은 책임을 다 하시려고 노력하신 분이었거든요.

 

그런 부분도 동료 분들이 멋있다고 하셨는데, 얼마 전부터는 어머니가 자기들이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대요. 생기가 없고 웃음이 없고 그런 모습을 보며 걱정이 많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밝고 당당하셨던 어머니가 갑자기 생기가 없어지고 왜 죽음을 선택하셨는지, 남은 가족으로서 진실은 밝혀야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어머니께 해 줄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한편 지난 20241102() 16:30분경 자신의 휴대폰에 문자로직원들이 나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이런일이 생기다니 너무나 부끄럽고, 직원들의 차가운 눈총과 말, 행동들, 비아냥거림 너무 힘들다. 가슴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럽다. 사무실에 나가기가 너무나 두렵고 무섭다. 난 조직에서 필요없는 사람이니까 이제 그만 영원히 쉬는 걸 선택. 직원들께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사망한 고권미란 팀장 가족들은 집단 따돌림과 갑질에 대한 의혹을 밝히기 위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해둔 상태다.

김미경 프리랜서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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