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4일 대한민국 제20대 윤석열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 판단으로 11시 22분에 파면되었다.
대한민국은 또다시 대통령이 파면되는 아픈 역사를 갖게 되었다. 계엄 선포에서 탄핵의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보았다.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소추 추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 결정을 받으면서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됐다. 지난해 12월 3일 늦은 밤 윤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지 122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담화를 통해 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 핵심 기관에 약 1,500명의 계엄군을 투입했다. 국회는 계엄 선포 2시간여 만인 12월 4일 새벽 여야 의원 190명의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윤 대통령은 같은 날 새벽 4시 30분경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 계엄령 유지 명분이 약해진 가운데, 윤 대통령은 “많이 놀라셨을 국민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비상조치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기도 했다.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반발한 야당은 즉각 탄핵소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 6당은 계엄 해제 다음날인 12월 4일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12월 7일 국회 본회의에 1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부쳤다. 그러나 재적 의원 300명 중 투표에 참여한 의원이 200명에 미달하여 표결 자체가 성립되지 못했다. 1차 시도에는 야당 의원 192명 전원과 국민의힘 소속 의원 3명만 참석해 정족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다. 야권은 일주일 후인 12월 14일 2차 탄핵소추안을 재차 상정했고, 이번에는 여야 의원 300명 전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04표, 반대 85표, 무효 8표, 기권 3표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헌법상 대통령 탄핵소추 요건인 재적 3분의 2(200표)를 넘어선 결과로, 이 표결에는 국민의힘 의원 최소 20여 명 이상이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됐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윤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되었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
여야의 정쟁은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로도 번졌다. 야당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공석이던 헌법재판관 3명(국회 몫)의 조속한 임명을 한덕수 권한대행에게 요구했으나, 한 권한대행은 “여야 합의가 우선”이라며 임명을 미뤘다. 이에 민주당 등 야 6당은 한 권한대행 취임 13일 만인 12월 27일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재석 의원 192명 전원 찬성으로 국회에서 가결시켰다. 국회의장 해석에 따라 총리 탄핵에는 국무위원 기준(재적 과반인 150표) 정족수가 적용되어 표결이 이루어졌다. 한 총리의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던 최상목 부총리가 이튿날부터 대통령 권한대행을 승계했고, 최 권한대행은 연말까지 조한창·정계선 등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2인을 임명하여 헌재 재판관 정원을 8명으로 채웠다.
헌법재판소 심판과 파면 결정
헌법재판소는 2024년 12월 14일 국회로부터 탄핵소추 의결서를 접수한 이후 곧바로 탄핵심판 심리에 착수했다. 헌재는 12월 말까지 두 차례의 변론준비절차를 거쳐 쟁점을 정리한 뒤, 이듬해 1월 14일에 첫 공개 변론을 열었다. 1월 초 국회 측은 탄핵 사유 중 하나였던 형법상 내란죄 위반 혐의에 대한 소추 사유를 정리하여 취소하고 헌법 위반 중심으로 심리를 진행할 것을 밝혔으며, 윤 대통령 측은 정계선 재판관 기피 신청을 내기도 했으나 기각되었다. 첫 변론기일에 윤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아 개정 4분 만에 기일이 종결되었고, 이후 1월 21일 3차 변론부터는 헌재에 직접 출석해 자신의 입장을 진술했다.
한편 탄핵심판과 별개로 형사사법 절차도 동시에 진행됐다. 대검찰청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 윤 대통령에게 내란 선동 및 내란수괴 혐의를 적용했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 첫 소환에 불응했으나,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신분이 피청구인으로 바뀐 이후 신병 확보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 1월 7일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공수처는 1월 15일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을 체포·구인해 수사에 돌입했다. 헌재 2차 변론일이던 1월 16일 윤 대통령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받았고, 다음 날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윤 대통령은 수감 상태로 탄핵심판에 임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강경 지지자들이 법원 청사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1월 말 윤 대통령에 대한 내란 관련 혐의가 구속 기소되어 본격 재판에 넘겨졌으며, 헌재 탄핵심판과 병행하여 형사재판도 진행되었다. 다만 3월 7일 법원이 윤 대통령 측의 구속취소 청구를 받아들여 석방을 결정함에 따라,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 선고를 불구속 상태로 기다리게 됐다.
헌재의 탄핵심판 심리는 총 11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1월 23일 4차 변론기일에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계엄 선포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뤄졌고, 2월 4일 5차 변론에서는 계엄령 하에서의 군 지휘라인에 있었던 전직 군 관계자들과 국가정보원 간부가 증언에 나와 당시 상황을 진술했다. 이어 2월 6일부터 2월 13일까지 관계자 증언과 증거조사가 추가로 열한 차례 진행되어, 계엄 선포 경위, 계엄포고령 발표 과정, 군·경 동원 배경, 국회 진입 시도 정황, 영장 없이 선관위 압수수색 시도, 정치인 및 법조인 체포 지시 등 탄핵심판의 핵심 쟁점 5가지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2월 18일에는 국회 측과 대통령 측 대리인이 각각 2시간씩 최종 법률 공방을 벌였으며, 2월 25일 열린 마지막(11차) 변론에서 윤석열 피청구인과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변론이 종결되었다. 이후 헌재는 한 달여의 평의를 거쳐 4월 4일 선고를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4월 4일 오전 11시 열린 선고 기일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탄핵심판 청구를 인용했다. 이로써 윤석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두 번째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된 대통령이 되었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피청구인(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헌법과 법률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밝혔다. 특히 계엄 선포 시 헌법 제77조가 정한 국가비상사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절차적 통제 장치를 무시하고 군·경력을 동원해 국회의 권한 행사를 방해한 점, 법적 근거 없이 중앙선관위 압수수색과 정치인 체포를 지시하여 헌법상 삼권분립과 국민 주권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한 점 등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위헌·위법 행위의 결과로 헌정 질서가 중대하게 훼손되었다며, “헌법 수호를 위해 피청구인을 파면함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밝혔다. 헌재의 인용 결정이 선고됨에 따라 윤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으며, 공직선거법에 따라 60일 이내(오는 6월 초) 새 대통령을 뽑는 조기 대선이 치러질 예정이다.
여론 추이: 탄핵 찬반과 지지율 변화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을 거치는 동안 여론은 극심하게 요동쳤다. 계엄령 선포 직후인 12월 초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역대 최저 수준인 17%대까지 폭락했다. 집권 후 처음으로 국정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고, 같은 기간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도는 20% 중반대로 추락한 반면 제1야당 지지도는 40% 중후반까지 치솟아 민심이 야당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이는 졸속 계엄 선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에도 다수 여론은 탄핵에 공감했다. 국회 탄핵안 가결 직후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탄핵을 찬성하는 응답이 70% 안팎에 달했고, 대통령 직무정지에 대한 긍정 여론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탄핵 추진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이를 “국민 뜻의 반영”으로 내세워 탄핵 정당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여론 지형은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대통령이 직무에서 배제되고 구속 수감되는 초유의 상황이 전개되자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결집 효과가 나타났고, 윤 대통령의 개인 지지율도 일부 반등하는 추이가 관측됐다. 1월 들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40~50%대까지 회복되었다는 결과까지 등장해 논란이 일었고, 실제 지지층이 결속하며 탄핵 반대 여론도 점차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이러한 보수층 결집은 특정 여론조사에 국한된 경향이었고, 전반적인 여론의 흐름은 탄핵 찬성 우세가 지속되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한국갤럽이 탄핵심판 선고 직전에 실시해 4월 4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도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응답이 57%, “기각해야 한다”는 응답이 37% 조사돼 탄핵 찬성 여론이 우위를 지켰다. 탄핵 찬성 응답은 한 주 전 조사 대비 소폭 감소(60%→57%)하고 반대는 증가(34%→37%)했지만,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은 대통령 파면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 조사업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세대와 이념 성향에 따른 견해차도 극명했다. 진보 성향 응답자의 90% 이상이 탄핵을 찬성한 반면, 보수층에서는 30% 안팎만 찬성 의견을 보여 대조를 이뤘다. 중도층에서는 탄핵 찬성 의견이 70%에 육박해 여론의 중심축이 됐다. 지역별로도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탄핵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보수 지지 기반이 두터운 영남권에서도 절반가량이 탄핵에 찬성하는 등 폭넓은 지지층에서 탄핵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해석된다. 헌재 탄핵심판을 앞둔 국민 여론의 전반적 분위기는 “파면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대통령 지지층과 보수 야권 일각에서는 “선출된 대통령을 여소야대 국회가 탄핵으로 몰아내는 선례에 우려가 크다”는 여론도 제기됐지만,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다수 의견을 뒤집지는 못했다.
탄핵 인용 직후 정치권 반응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자 여야는 엇갈린 반응을 내놓았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헌재 선고 직후 공식 입장문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히 수용한다”고 밝혔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안타깝지만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는 길”이라며 당의 입장을 전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여당으로서 국정을 안정시킬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점을 반성한다고 밝혔다. 권 비대위원장은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의 반복된 의회 폭주와 정치적 폭거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며 탄핵 국면을 초래한 데 대한 자성의 뜻을 표명했다. 향후 혼란을 최소화하고 국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초당적으로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6월 조기 대선 준비에 착수하여 보수 진영을 재정비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헌재 결정 직후 국회에서 비상의원총회를 열고 당 차원의 대응을 논의했으며, 대다수 의원이 헌재 판단을 수용하고 국민 통합과 질서 유지를 강조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편 일부 강경 보수 성향 인사들은 탄핵 결과에 유감을 표하면서도 당 공식 입장에 따라 별다른 이견 없이“당분간 혼란을 수습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반면 야당과 야권 인사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재판소의 만장일치 탄핵 인용 결정은 국민이 승리한 날”이라며 즉각 논평을 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헌재 선고 직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스스로를 지켜냈다”며 “이번 결정은 헌정질서 파괴 행위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 사유를 “국민의 신임을 배반하고 헌법 가치를 훼손한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책임 있게 임하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진보당 등 다른 야당들도 “헌법 수호와 민주주의 승리를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특히 진보당 등 소수 야당은 윤 대통령을 “내란 범죄의 수괴”로 지칭하며 헌재의 파면 결정이“법 앞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논평했다. 한 야당 의원은 “이번 탄핵 인용 결정으로 국민이 더 이상 분열이 아닌 화합과 개혁으로 나아갈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야권은 조기 대선 국면에서도“촛불 민심의 연장선”이라며 정권 재창출을 위해 협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찬반 국민 집회와 사회 갈등 양상
탄핵 정국 내내 광장의 민심도 둘로 갈라져 대립했다. 한쪽에서는 윤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이어졌고, 다른 한쪽에서는 탄핵 반대와 대통령 복귀를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가 맞섰다. 지난해 12월 계엄 직후부터 서울 도심 곳곳에서 자발적인 시민 촛불시위가 벌어졌으며, 시민들은 “독단 통치 중단하라”, “계엄 쿠데타 규탄” 등의 손팻말을 들고 평화 시위를 시작했다.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 등지에는 탄핵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수만 명씩 운집했다. 12월 10일과 17일에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주최 측 추산 수십만 명이 모여 들었고, 참가자들은 “윤석열을 탄핵하라”, “국민이 정의를 심판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등 지방 도시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탄핵 지지 시위가 열려 전국적인 촛불 물결이 형성되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인 12월 17일 서울 도심 촛불집회에서는 시민들이 대형 태극기를 펼치며 “민주주의 수호”를 외쳤고, 일부 참여자들은 헌법책을 들고 나와 평화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국민의 힘으로 헌정을 바로 세우겠다”고 다짐하며 헌법재판소의 엄정한 심리를 촉구했다.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탄핵 찬성 진영의 집회 열기는 꾸준했다. 해를 넘겨 2025년 2월까지 매주 토요일 광화문과 안국역 인근에서 촛불집회가 이어졌고, 주최 측과 시민단체들은 이를 “제2의 촛불혁명”으로 명명했다. 3·1절인 3월 1일에는 탄핵 찬반 양측이 최대 규모의 집결을 보였다. 이날 서울 경복궁 앞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탄핵 찬성 범국민대회가 열려 야 5당 대표 및 지도부, 시민사회단체가 총출동했다. 경찰 추산 1만8천여 명(주최 측 추산 10만 명) 이 몰린 이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내란수괴 윤석열을 즉각 파면하라”, “민주주의 만세”, “내란 종식 만세” 등의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시민들은 촛불 대신 태극기와 LED 응원봉, 피켓 등을 흔들며 “헌재는 국민 뜻을 따르라”고 요구했다.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동 사거리까지 행진이 이어졌고, 질서 정연한 평화시위를 펼친 군중은 헌재를 향해 “8 대 0 전원일치 파면”을 연호했다.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진 4월 4일에도 헌재 앞에는 탄핵을 지지하는 시민 수백 명이 모여 선고 결과를 지켜봤고, 결정문 낭독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환호하며“국민이 승리했다”고 기쁨을 표출했다. 시민들은 서로 태극기를 흔들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지나가는 행인들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승리”를 함께 자축했다.
한편 탄핵 반대 집회도 보수 성향 단체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열렸다. 초기에는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윤 대통령 구속 이후 보수 진영이 위기감을 느끼면서 참가자가 급증했다. 1월 중순 이후 서울역, 시청 앞 광장 등지에서 보수단체 주도의 탄핵 반대 집회가 개최되었고, 이들은 “탄핵 무효”, “내란음모 조작 중단” 등의 구호를 외치며 맞불을 놨다. 1월 21일 서울서부지법이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을 때 일부 성난 지지층이 법원 청사에 난입하여 충돌이 빚어졌고, 경찰에 연행된 참가자도 발생했다. 그러나 대다수 탄핵 반대 집회는 비교적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참가자들은 애국가와 군가를 제창하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자”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이어갔다. 극우 성향 단체인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구국기도회(세이브코리아)’ 주도로 열린 3월 1일 집회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버스를 대절해 온 보수층이 여의도에 대거 집결했다. 이들은 ‘탄핵반대 계엄찬성’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었으며, 손현보·전광훈 목사 등 보수 인사들의 인도로 나라 안위를 위한 기도회 형식 집회를 가졌다. 세이브코리아 측은 이날 참석 인원이 20만 명에 달한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탄핵 찬반 양측 집회 참가자를 합쳐 최대 12만 명가량으로 추산했다.
탄핵 반대 시위에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도 일부 가세했다. 김기현 전 대표, 윤상현 의원 등 국민의힘 인사 수십 명은 보수단체 무대에 올라 지지자들과 함께 “탄핵 기각”을 외쳤으며, 구속 중인 윤 대통령이 측근을 통해 전달한 “끝까지 싸워달라”는 옥중 메시지가 현장에서 공개되기도 했다 . 윤 대통령의 법률대리인단도 집회에 참석해 “대통령께서 건강히 잘 계시며 지지자들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말을 전하며 결속을 호소했다. 반면 야당은 이러한 보수집회에 대해 “헌재를 압박하는 거리 투쟁”이라고 비판했고, 실제로 보수집회 참가자들은 탄핵심판 주심인 문형배·이미선·정계선 재판관을 성토하며 “즉각 처단하자”는 과격 구호까지 외쳐 우려를 낳았다. 다행히 탄핵 심판 선고 당일까지 큰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찬반 집회 주최 측 모두 헌재 결정 이후에는 집회를 자제하고 법질서와 국민 통합을 강조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극심한 사회 분열과 대립을 낳은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심판을 두고 수개월간 전국이 혼란에 휩싸였지만, 헌법과 법률 절차에 따른 최종 판단으로 일단락을 맺었다.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이 나온 직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그 결과를 받아들였다. 탄핵을 지지한 시민들은 서로 포옹하며 “촛불의 완성”이라고 환호했고, 탄핵을 반대하던 시민들은 굳은 표정으로 현장을 떠나거나 일부는 눈물을 흘리며 아쉬움을 삼켰다. 향후 진행될 조기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치유와 통합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정치권과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민주주의와 헌법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이번 탄핵정국은 헌정질서 수호와 국민 주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 동시에, 성숙한 시민 의식과 평화적 시위 문화가 혼란을 이겨낸 밑바탕이 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정국은 조기 대산체제로 급박하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2개월 후 대통령선거가 치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6월 3일이 가장 유력할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