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인생을 개척해온 사람, 또 허들이 많았던 시대를 살았던 여성으로서 그 모든 것들에 굴하지 않고 도전하며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서둘러 서울 광화문으로 향했다.
따뜻한 햇살이 스며드는 한 카페에서 처음 인사를 나눈 김경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前여성가족부 차관)은 오래전부터 알고지낸 고향 후배를 대하듯 소탈하고 다정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굽이치는 내성천의 물길이 잠시 숨을 고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두암고택(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은 400년의 세월을 품은 유서 깊은 고택으로 김 회장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김회장은 수백 년간 선비의 기개가 서려 있는 이 고즈넉한 기와지붕 아래 유교적 가부장제의 견고한 질서 속에서도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 석 자로 살겠다"는 당찬 자의식을 키웠다.
그는 훗날 대한민국 관료 사회에서 가장 거칠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으로 꼽히는 고용노동부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무수히 갈아치우며 유리천장을 깨뜨린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다.
또한 여성가족부 차관으로서 부처 폐지론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최후의 보루를 지켜내고자 했으며, 현재는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으로서 초고령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인 노후 소득 보장 시스템을 설계하고 있다.
김 회장과 부석사의 배흘림기둥과 전통적인 문살 등 전통의 미를 잘 살린 영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영주에서의 성장과정과 대한민국 고용·노동·여성·복지 정책의 설계자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들을 들어보았다.
Q. 영주의 유서 깊은 '두암고택' 에서 태어나 영주여고를 졸업하셨습니다. 한국의 전통적 가치가 강한 환경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의 경험이, 훗날 '남녀고용평등법' 이나 '가사근로자보호법' 처럼 기존의 사회 질서에 변화를 주는 정책을 추진하시는 데 어떤 영향을 미는지 궁금합니다.
A.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죠. 저희 할아버지도 향교 전교를 하셨으니 집안 분위기가 얼마나 엄격했겠어요. 하지만 저희 아버지는 좀 다르셨어요. '아들이든 딸이든 실력껏 하면 밀어준다'는 주의셨죠. 그 믿음 덕분인지 저는 어릴 때부터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김경선'이라는 내 이름 석 자로 살겠다는 자의식이 강했어요.
중학교 때 윤리 선생님이 '나란 무엇인가'를 쓰라고 했을 때부터 치열하게 고민했죠. 그 고민이 훗날 남녀고용평등법을 전면 개정할 때 큰 영향을 줬어요. 여성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던 법을, 경제 주체로서 남녀 모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게 돕는 법으로 뜯어고쳤죠. 유교적 뿌리 위에서 현대적 가치를 꽃피웠다고 할까요?"
Q. 고용노동부 재직 시절, 여성에게는 불모지와 같았던 '노동정책국'에 자원하시며 최초의 여성 기조실장까지 오르셨습니다. 남성 중심의 노동부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이 만들어지기까지 쉽지만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2016년 조선업 불황때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 관련 현지 실사단을 이끌고 거제시를 방문, 토론회하는 모습
A. "저는 쉬운 길보다 도전적인 일을 좋아해요. 당시 노사 관계는 복수노조 허용과 타임오프제 문제로 꽉 막혀 있었어요. 아무도 풀지 못한, 20년 묵은 숙제였죠. 다들 피하는 자리였지만 '이 어려운 걸 내가 한번 풀어보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인사권자에게 직접 자원했죠.
기조실장도 그래요. 제가 여성이어서, 최초가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닙니다. 노동부의 모든 국장 보직을 거치며 업무를 가장 잘 알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게 된 거예요. 저는 후배들에게 항상 말해요. '조직이 만들어주는 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스스로 자리를 만들어라.' 저는 그 말을 실천하며 살아왔던 것 같아요."
2017년 고용노동부에서 우수공직자로 홍조근정훈장 받았을때
Q. 영어영문과를 전공하시고 행정고시에 합격하신 후 공직 생활 중 서울대 정책학 석사, 인디애나대 법학 석사, 서울대 법학 박사에 이어 미국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하셨습니다. 쉽지 않은 학문적 여정을 걸어오시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정책은 책상머리에서 뚝딱 만들어지는 게 아니더라구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전쟁터죠. 국민을 설득하고, 의견이 다른 쪽과 논쟁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압도할 수 있는 논리와 전문 지식이 필요해요. 제가 미국 변호사 자격을 따고 법학 박사를 한 건, 입법 과정에서 외국 사례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의견이 다른 분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서였어요.
2018년 장애인고용담당 국장으로 토론회 참여
한번은 박사 과정 면접관이 '왜 이렇게 욕심이 많냐, 애들은 어쩌고 공부하냐'며 핀잔을 주더군요. 그 말에 오기가 생겨 더 열심히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 덕분에 배우자 출산휴가제나 가사근로자법 같은 새로운 제도를 만들 때, 법적 토대를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습니다. 공부는 저에게 사치가 아니라 생존 수단이었습니다."

2019년 근로기준국장시절 언론 브리핑
Q. 가장 기억에 남는 정책 중 하나로 꼽으신 '가사근로자법'은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68년 만에 '그림자 노동'을 양지로 끌어올리셨는데요. 이 법이 우리 사회의 돌봄 노동 가치에 어떤 실질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하십니까?
A. "맞아요. 가사·돌봄 노동은 저출산 해결의 핵심 인프라입니다. 과거에는 엄마들의 무급 희생으로 육아, 가사가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전문 직업으로 인정해야 해요. 제가 만든 법은 가사도우미 분들에게 4대 보험과 퇴직금을 보장하고, 이용자들에게는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반이 됐죠.
통계청이 추산한 무급 가사노동 가치가 490조 원이에요. 이 중 10%만 유급화돼도 40조 원의 새로운 시장이 열립니다. 플랫폼 기술과 결합하면 비용도 낮출 수 있고요. 여성의 노동 가치를 높이고 경제도 살리는 일석이조의 정책, 제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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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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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전 (남녀고용평등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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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후 (일·가정 양립 지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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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선의 철학 및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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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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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근로자의 차별 금지 및 모성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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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모두의 일·생활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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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보호의 대상'에서 '경제의 주체'로 재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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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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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중심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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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남성) 출산휴가 도입, 육아휴직 분할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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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인식의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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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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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제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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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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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단절 없는 육아 병행 모델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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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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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적 장치 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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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돌봄 휴직 제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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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 대비 가족 돌봄의 사회적 지원 근거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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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차관취임때 고향 시골마을(영주시 이산면)에 걸린 플랭카드 앞에서
Q. 여가부 차관 재임 시절 , ‘여가부 폐지론’ 이라는 거센 도전에 직면하셨습니다. 당시 브리핑에서 "피해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냐"고 반문하며 울컥하셨던 장면 이 회자됩니다. 28년 노동부에서 정책통이셨던 분이, 여가부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시게 된 과정과 당시 심경을 듣고 싶습니다.
A. "그때는 정말 절박했어요. 여가부는 힘 있는 부처가 아닙니다. 성폭력 피해자, 학교 밖 청소년, 한부모 가정 같은 우리 사회 가장 약한 고리를 지키는 곳이죠. 정치적 공방 속에 이 기능들이 사라진다면, '피해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니 저도 모르게 울컥하더라고요.
물론 20대 남성들의 박탈감도 이해합니다. 그래서 저는 재임 중에 여가부의 방향을 '여성 우대'가 아닌 '성평등'과 '가족 지원', '청소년 보호'로 명확히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름이 무엇이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부처 하나쯤은 우리 사회에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한 가지 더 여담으로 말씀드리자면 어려움이 많았지만 특히 여가부 차관시절에 검찰 고발건으로 수사를 받은 적이 있어요.결국 불기소처리 되었지만 정말 힘든 경험도 했습니다."
2022년 문재인정부, 마지막 차관회의
Q. 상호 이해와 배려의 부재로 발생하는 세대 갈등, 지역 갈등 등 사회적으로 고민이 필요한 어젠다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A. “한국의 갈등은 결국 ‘이해 부족’에서 온다고 봅니다. 특히 성 갈등은 남녀 문제로만 보지 말고, 다양성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AA)’도 여성만 늘리라는 법이 아닙니다. 여성이 70%인 업종이면 오히려 남성 채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맞습니다. 각자의 능력과 적성에 맞춰 자연스러운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강제적 균형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다양성의 완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현재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으로서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고 진단하셨습니다. 고용부에서의 관련 경험을 바탕으로 볼 때, 국민들의 실질적인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제시할 방향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결론부터 말하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입니다. 퇴직연금은 원래 노후소득의 핵심 축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퇴직금 제도에서 출발해 아직도 일원화가 완전하지 않습니다.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 번째로 퇴직연금 일원화가 시급합니다. 두 번째는 수익률이 너무 낮습니다. DC에 가입했지만 스스로 운용하지 않는 근로자가 너무 많아요. DB인지 DC인지도 모르는 분들도 많고요. 마지막으로 근로자가 퇴직 시마다 연금을 끊어 쓰는 문화도 문제입니다.
(※DB형은 회사가 운용해 근속·평균임금으로 퇴직금이 미리 정해지고, DC형은 회사가 매년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근로자가 직접 운용해 최종 금액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2024년 퇴직연금포럼 여야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초청 간담회
결론적으로 지금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훨씬 오래 살아야 하는데, 연금 준비는 턱없이 부족해요.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서 써버리는 관행을 없애고, 퇴직연금을 끝까지 지켜서 죽을 때까지 '월급'처럼 받아야 합니다.
저는 평생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세상'을 꿈꿔왔어요. 청년에게는 기회를, 중장년에게는 안정을, 노년에게는 존엄을 주는 사회.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바로 연금이라고 생각합니다. 퇴직연금이 든든하게 받쳐줘야 청년들의 부양 부담도 줄어들고, 경제도 선순환할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에는 30년 일하고 40년을 살아야 합니다. 퇴직연금은 ‘목돈’이 아니라 ‘내 노후의 월급’이라고 인식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교육과 홍보를 강화하고, 근로자 스스로 노후를 설계하도록 돕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25년9월 영주여고총동창회
Q. 끝으로 고향 영주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영주는 제 세상의 전부였고, 지금도 제 마음의 안식처입니다. 대학 논술시험 치러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청량리역에서 지하철 타는 법도 몰랐던 제가 지금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고향이 준 힘 덕분입니다. 제가 어디에 있든 '영주 사람'이라는 긍지를 잊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영주를 빛나게 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는 공직 30년의 무게와 한 인간으로서의 진심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그는 늘 ‘최초의 여성’이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그 안에 있던 건 ‘여성’이 아니라 뛰어난 정책가, 행정가, 현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걸어온 길은 한 사람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화살표였다.
“일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그 문장을 향해 그녀는 여전히 걷고 있다. 영주에서 시작된 발걸음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미래를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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