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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人영주]영주의 흙에서 이탈리아의 태양을 빚다 – 박누리 셰프의 미식 연대기

선비꽃이야기에서 만난 박누리 셰프와의 인터뷰

기사입력 2026-02-1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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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일입니다. 영주에서 배운 식재료에 대한 예우,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확인한 본질에 대한 고집이 지금의 제 요리로 남은것 같습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 예스러운 정취가 흐르는 서촌 골목 끝자락에 1959년 지어진 단아한 양옥집 한 채가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셰프가 직접 가꾼 아담한 정원이 손님을 반기고, 안으로 들어서면 기와와 나무의 따뜻한 질감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곳, '데이지 셰프박누리가 이끄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갈리나 데이지(Gallina Daisy)’.

 

갈리나는 이탈리아어로 암탉을 뜻한다. 여성 셰프인 자신을 상징함과 동시에,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넉넉한 음식을 내놓겠다는 그녀의 다짐이 서린 이름이다.

 

중학생 시절부터 칼을 잡았던 요리 신동에서, 이제는 한국의 로컬 식재료와 이탈리아 정통 퀴진을 완벽하게 결합해 내는 독보적인 셰프로 우뚝 선 박누리. 그녀를 만나 영주에서의 유년 시절부터 서촌에 뿌리내린 10년의 세월, 그리고 요리 너머의 삶에 대해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Q.  프님, 인터뷰를 위해 자료를 조사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고향 영주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영주에서 보낸 어린 시절, 셰프을 요리의 세계로 이끌었던 계기가 있었다면?

A. 제 기억 속의 영주는 늘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었어요. 미루나무 옆을 소달구지가 덜커덩거리며 지나가고, 맑은 경안천에서 친구들과 멱을 감던 추억들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를 자극했던 건 냄새였어요. 새벽 안개를 뚫고 올라오는 흙내음, 그리고 어머니의 부엌에서 나던 구수한 장 냄새와 갓 수확한 채소들의 풋풋한 향기 말이죠.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산지에서 갓 얻은 재료들이 부엌에서 맛있는 요리로 변모하는 과정 자체가 저에겐 하나의 마법 같았습니다. 그 시절 마주했던 눈개승마나 영주 한우 같은 식재료들이 가진 본연의 힘이 지금 제가 추구하는 재료 중심의 요리의 원형이 된 셈이죠.

 

 

Q. 당시의 친구들이 입시 공부에 한창일 때, 셰프님은 중학생 때부터 조리 자격증을 따기 시작하셨습니다. 당시엔 이례적인 요리 조기교육이었는데, 당시 어린 박누리에게 요리는 어떤 의미였나요?

A. 사실 그건 제 의지보다 어머니의 선견지명이 컸어요. 어머니 이신옥 여사님은 당신께서 요리를 늦게 시작하며 겪었던 고충을 딸은 겪지 않길 바라셨죠. 어머니는 제가 될성부른 나무라고 생각하셨는지, 남들 악기 배울 때 저를 요리 학원으로 보내셨어요. 처음엔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한식, 중식, 일식 자격증을 하나씩 따갈 때마다 묘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재료를 썰고, 불을 조절하고, 하나의 완성된 접시를 내놓는 과정이 세상 그 어떤 공부보다 정직하게 느껴졌거든요. 대학 조리과에 진학해 각종 대회를 휩쓸면서는 확신이 들었죠. ', 이것이 내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이구나' 하고요.

 

Q. 어머니 이신옥 여사님은 영주 향토 음식 전문가로도 유명하시죠. 셰프님에게 어머니는 스승이자, 동료이자, 때로는 넘어서야 할 거대한 산처럼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A. 어머니는 제 요리 인생의 뿌리 그 자체입니다. 어머니는 15녀를 키우며 주변의 권유로 뒤늦게 요리를 배우기 시작하셨는데, 그 열정이 정말 대단하셨어요. 10년 넘게 영주와 서울을 오가며 궁중 요리부터 사찰 음식까지 한식의 모든 영역을 섭렵하셨죠. 어머니의 부엌에는 외증조할머니 때부터 내려온 100년 넘은 가마솥이 있는데, 그 가마솥 앞에서 땀 흘리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제겐 가장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요리는 기술이 아니라 끈기와 정성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신 분이니까요. 지금도 제가 지치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어머니가 장을 담그고 김치를 치대던 그 절박하고도 숭고한 에너지를 떠올립니다.

 

 

Q. 한식 전문가인 어머니와 이탈리안 셰프인 딸의 요리 대결이나 레시피 협업이 미디어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장르가 다른 두 분이 식재료를 두고 소통하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A. 최근에도 어머니와 영주 한우와 눈개승마를 주제로 육개장과 토마토 스튜 대결을 펼친 적이 있어요. 재미있는 건, 재료를 바라보는 시선은 같은데 해석하는 언어만 다르다는 거예요. 어머니는 식재료를 시간으로 다스려 깊은 맛을 내는 발효와 숙성에 집중하신다면, 저는 그 재료의 순간을 포착해 생명력을 끌어올리는 이탈리아 식 조리법을 사용하죠. 어머니와 함께 제철 식재료를 연구하다 보면, 결국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피조개 하나를 두고도 어머니는 찜으로, 저는 세비체로 풀어내며 서로의 감각을 자극하죠.

 

Q. 2009년 이탈리아로 떠났던 연수가 셰프님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스승이었던 산티노 셰프에게 끊임없이 ?”라고 물으셨다면서요?

A. 당시 저는 조리법의 수치화된 이유가 궁금했어요. 하지만 스승님은 항상 '이탈리아에선 원래 이렇게 한다'라고만 답하셨죠. 그 답답함을 풀기 위해 직접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현지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깨달은 건, 이탈리아 요리는 레시피가 아니라 로컬리티(Locality)’의 산물이라는 점이었어요. 그들은 자기 동네의 흙에서 자란 채소, 앞바다에서 잡힌 생선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이 있었고, 그것을 가장 단순하게 조리해 먹는 것이 최고라는 걸 알고 있었죠. 그곳에서 저는 제가 한국에서 만들던 음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동시에 '한국의 식재료로도 충분히 훌륭한 이탈리안을 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Q.갈리나 데이지의 메뉴들은 식재료의 이름이 그대로 메뉴명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풍기(Funghi)’보타르가(Bottarga)’ 파스타는 셰프님의 철학을 상징하는 메뉴로 꼽히는데요.

A. 재료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제 고집 때문이에요. '풍기'에 사용하는 큰송이버섯은 원주의 한 식당에서 우연히 밑반찬으로 나온 걸 맛보고 반해 산지를 직접 수소문한 거예요. 이탈리아의 포타벨라 버섯과 식감이 흡사하면서도 우리 땅의 향취가 가득하죠. '보타르가' 역시 지리산에서 문배주를 발라가며 말린 양재중 명인의 어란을 사용합니다. 제주도 어부에게 직접 공수받는 딱새우로 만든 스캄피 파스타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좋은 재료가 있는 곳이라면 강원도부터 제주도까지 어디든 달려갑니다. 생산자의 정성을 알기에, 주방에서 제가 할 일은 그 재료가 가진 잠재력을 방해하지 않고 정확한 조리법으로 끌어올리는 것뿐입니다.
 

Q. 1959년에 지어진 건물을 레스토랑으로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서촌이라는 공간이 셰프님의 요리에 어떤 영감을 주나요?

A. 서촌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에요. 산이 가깝고 골목마다 역사가 서려 있죠. 제가 하는 요리는 서양식이지만, 그 바탕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흐르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기와를 소품으로 쓰고 나무 소재를 활용해 따뜻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죠. 이 공간에서 80대 어르신이 개인 나무젓가락을 들고 오셔서 파스타를 즐기시던 모습은 제게 가장 큰 보람이었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후 아드님이 방문해 '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곳'이라고 말씀해 주셨을 때, 제가 단순히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짓고 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Q. 셰프라는 직업은 주방이라는 치열한 현장을 진두지휘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갈리나(암탉)’라는 이름처럼, 여성 셰프로서 셰프님이 지향하는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A. 주방은 군대처럼 엄격해야 할 때도 있지만, 결국은 사람이 모여 하나의 맛을 만드는 곳입니다. 저는 동료들에게 좋은 스승이자 든든한 누나, 언니 같은 선배이고 싶어요.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팀원 개개인의 역량이 꽃필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제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셰프는 요리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화적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봐요. 방송 출연이나 책 집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데이지 키친런칭 역시 더 많은 분에게 건강한 미식 문화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 도전들입니다.

 

 

Q. 마지막으로, 셰프 박누리가 꿈꾸는 요리 인생의 최종 도착지는 어디인가요? 언젠가 다시 고향 영주로 돌아오실 계획도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최근 서촌에서의 10년 세월을 뒤로하고 고향 영주로의 귀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곁에서 영주의 향토 식재료를 더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프로젝트를 구상 중이에요. 영주의 선비 정신과 맑은 자연이 이탈리아의 본질적인 맛과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날지 저 역시 무척 기대됩니다. 제 최종 목표는 거창한 스타 셰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초심을 잃지 않고, 저만의 색이 담긴 정직한 음식으로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사로 남는 것,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박누리 셰프와의 대화는 시종일관 겸손하면서도 단단했다.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요리들이 왜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위로를 주는지, 그 해답은 명확했다. 그녀는 영주의 흙을 잊지 않았고, 어머니의 헌신을 삶의 지표로 삼았으며, 이탈리아의 정통성을 자신만의 요리 언어로 재해석해냈다.

 

갈리나 데이지는 단순히 파스타를 파는 곳이 아니라, 한 셰프의 치열한 고찰과 따뜻한 정서가 응축된 미식의 성전이었다. 이제 서촌을 떠나 영주의 품으로 돌아가 인생 2막을 준비하는 그녀. 박누리 셰프가 영주의 태양 아래서 새롭게 빚어낼 그녀만의 맛재료 본질에 대한 미학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그녀의 앞날은 암탉의 품처럼 따스하고, 데이지 꽃처럼 환하게 빛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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