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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人영주] 김수남 박사, 한국 천연물 연구의 길을 열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실패의 데이터마다 정답이 숨어 있다

기사입력 2026-06-2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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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6년 과학·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서 영예의 과학기술포장을 수훈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의 김수남 책임연구원. 지난 33여 년간 자생 식물을 이용한 피부 보호, 아토피 치료 및 대사 질환 제어 연구에 헌신하며 천연물 바이오 R&D 분야의 독보적인 권위자로 우뚝 선 그를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에서 만났다.

 

Q. 영주의 청정 자연 속에서 보내신 어린 시절이, 지금의 천연물 연구와 관련이 있으셨나요? 아울러 영주에서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A. 어릴 때는 정말 시골에서 산과 들을 제집처럼 뛰어다니며 자연과 어울려 놀기 바빴어요. 돌이켜보면 그 시절 자연 속에서 뒹굴었던 경험 덕분에 천연물이라는 존재와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어요.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 중에 잔디씨 1kg을 채집해 오라'는 다소 무모한 숙제가 있었어요. 잔디 씨를 어디서 효율적으로 채집할까 고민하다가, 산으로 들로 뛰어놀 때 무덤가에 잔디가 무성했다는 게 생각났어요. 무덤 주변을 샅샅이 뒤져 잔디 씨를 쓸어 담아 결국 1kg을을 꽉 채워 제출했답니다.

 

 

그때 잔디 씨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잔디의 특성과 잡초들의 생리적 특징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었는데, 이런 경험들이 최근 연구까지 이어졌어요. 우리가 흔히 무덤가나 잔디밭에서 잡초로 취급하던 들풀 중에 쇠치기풀이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이 식물의 효능을 실험하면서 어릴 때 아주 흔하게 보던 식물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식물이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를 완화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이에 대한 특허 출원까지 마쳤습니다. 40여 년 전 영주 벌판을 뛰어놀았던 자연친화적 성장 환경이 오늘날 혁신적인 탈모 완화 물질이라는 과학적 결실로 되돌아온 셈이지요.

 

Q. 약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성균관대에서 학사·석사·박사까지 일관되게 약학을 파고드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솔직히 약학을 선택한 데에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냥 공부를 잘했는데 보통 선생님으로 진로를 결정하긴 싫었어요. 우연히 친인척이 '수남이는 공부 잘하니까 약대 가면 되겠다' 한마디가 저를 지금의 이 자리에 있게 한 운명의 한마디 였습니다.

석사·박사까지 꾸준히 쭉 공부하게 된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장래희망이 '박사'였거든요. '공부 잘하면 무조건 박사를 하는 거다' 그렇게만 알고 그대로 따라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가 약학대학에 진학하고 석사 과정에 문을 두드렸던 1992년만 해도 대학 사회의 성차별과 보수성이 강했습니다. 당시 많은 원로 교수님들은 대놓고 '여학생들은 가르쳐 놓으면 금방 시집가서 그만두니 학위 과정에 받아줄 필요가 없다'며 여학생의 대학원 입학을 차단하곤 했습니다.

 

실력과 성적이 아무리 뛰어나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연구의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현실이 뼛속 깊이 서러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제 뜻을 굽히지 않고 끈질기게 문을 두드린 끝에, 당시 갓 부임하셔서 학생이 없던 젊은 신참 교수님이셨던 이동권 교수님 연구실에 극적으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밤낮없이 실험에 매진한 결과, 마침내 저는 학과 여성 박사 1라는 타이틀을 쥐게 되었습니다. 제가 굳게 닫혀 있던 첫 번째 문을 힘겹게 열어젖히자, 비로소 후배 여학생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연구실로 걸어 들어올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을 때의 뿌듯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Q.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강원지부장·부회장 등, 여성 과학자 네트워크 활동에 헌신해 오셨습니다. 여성으로서 연구 현장에서 겪었던 어려움이나, 반대로 여성이기에 가능했던 시각이 있었다면 소개해주세요.

 

A. 대학원 졸업 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에 스카우트되어 갈 당시, 저는 이미 임신 4개월 차의 몸이었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기업 문화에서는 임신한 여성 연구원을 새로 채용하는 것은 고사하고, 기존 직원조차 퇴사를 압박받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당히 실력으로 저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연구소 최초의 박사 학위 소지 여성 1이자 임신부 스카우트 채용 1로 당당히 입사했습니다.

 

출산과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가 덮쳐왔을 때도 결코 연구를 놓지 않았습니다. 시댁과 친정 부모님의 헌신적인 도움을 주셔서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웠고, 덕분에 제 커리어는 단 하루도 중단된 적이 없었습니다. 제 나이 또래의 여성 연구자들이 결혼과 육아의 허들을 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날 때, 저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는 신념 하나로 버틴 결과, 동료 남성 과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오늘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Q. 올해 과학기술포장과 KIST 공로상을 함께 수훈하셨습니다. 30여 년의 연구 인생에서 이번 수상이 어떤 의미인지요?

 

A. 일단 연구를 열심히 한 부분을 높이 평가해주신 것 같아 너무 기뻤고 보람되었습니다. 과학자는 사실 연구만 몰두하다보니 결과에 대한 만족에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합니다. 그런데 기관에서 알아주시고 상도 주시니까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 내 연구 인생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주시는구나' 싶어서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Q. 한여름 강릉의 논두렁을 빨간 양산 쓰고 뒤지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외지인 부동산 투기꾼'으로 오해받으면서까지 야생 군락지를 찾아 결국 스마트팜 재배에 성공하셨다고요. 그 집념의 원동력과, 군락지를 발견했을 때의 감회를 들려주세요.

 

A. 연구과정에서 아토피 피부염의 면역 반응을 억제하면서 동시에 무너진 피부 장벽을 조절하는 이중 케어 성분을 자생 식물인 수염가래꽃에서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국내 한약재 시장에는 국산 수염가래꽃 원료가 전혀 유통되지 않아 대량 확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원료의 국산화와 표준화를 위해 직접 식물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지만, 야생 상태의 실물 생김새조차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식물원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도감을 머릿속에 집어넣은 뒤,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7~8월에 무작정 논밭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뙤약볕 아래에서 제가 새빨간 양산을 쓰고 논둑을 헤집고 다니자, 동네 농부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대낮에 요상한 옷차림으로 논밭을 기웃거리니 '투기를 목적으로 땅을 보러 온 서울 부동산업자'로 오해하신 것이죠. 그런 유쾌한 오해 속에서 오죽헌 인근과 강릉 왕산면 일대의 논둑에서 기적적으로 야생 군락지를 찾아냈고, 이를 KIST의 첨단 스마트팜(Smart Farm) 시스템으로 이식해 연중 일정한 품질의 원료를 대량 수확할 수 있는 기술 표준화를 완성했습니다. 이 원료는 대기업에 기술 이전되어 현재 피부 및 두피 장벽 강화 화장품으로 10월에 출시되어 전 세계 소비자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Q. 고려인삼학회에서 학술위원장·국제위원장·산학협력위원장을 두루 맡고 계십니다. 고향 영주의 풍기인삼은 우리나라 최초의 인삼 재배지인데요. 풍기인삼이 연구자로서 박사님께 어떤 의미실지 궁금합니다.

 

A. 어릴 때부터 고향 영주의 풍기인삼을 늘 먹고 자란 덕분에 30년 넘는 강행군 연구에도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풍기인삼의 약리적 우수성은 제 몸이 먼저 보증합니다.

 

다만 현재 인삼 산업의 구조를 보면 안타까운 면이 큽니다. 현재 국내외 인삼 시장은 특정 대기업 브랜드 하나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풍기나 금산 등 훌륭한 원산지를 가진 지역 브랜드들은 마케팅과 자본력에 밀려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내 지역 간의 좁은 경쟁에서 벗어나, 고려인삼이라는 거대한 글로벌 브랜드 자산의 격()을 함께 높이는 '전체 파이 키우기' 전략이 필요합니다. K-뷰티가 전 세계적으로 흥하면서 외국인들이 브랜드에 상관없이 '한국 화장품' 자체를 믿고 싹쓸이 쇼핑해 가듯, 고려인삼 역시 글로벌 가치 브랜딩을 이뤄내야 풍기인삼 산업도 동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영주·경북 지역 천연물 소재의 산업화 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역 산업과 연계한 성과 사례가 있으신지도 궁금합니다.

 

A. 핵심은 '초기 마케팅과의 융합 R&D'입니다. 대학이나 지역 연구소들이 아무리 우수한 약리 효능을 과학적으로 검증해 내도 시장에서 사장되는 이유는, 제품 기획과 마케팅 부서가 최종 단계에서야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기업 화장품 연구소에서 체득한 성공 공식은, 연구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전문 마케터들이 밀착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소비 선호도와 시장의 트렌드를 연구의 설계 단계부터 함께 녹여내야만, 실질적인 매출과 상용화로 이어지는 강한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습니다. 영주 풍기인삼을 비롯한 경북의 청정 약용 자원 산업화에도 반드시 이 프로세스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Q.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며, 세상 모든 곳이 나의 면접장이다"라는 박사님의 좌우명은 수많은 청년 인재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깜깜한 실험실에서 무수한 실패를 겪고 있을 후배 과학자들에게 조언을 건네주신다면요?

 

A. 제가 연구자로서의 삶을 되돌아보니 석사 과정부터 시작해서 3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더라구요. 연구는 결과가 단기간에 나오는 게 아니라 긴 호흡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실패'예요. 실패를 겪어 봐야 극복하는 과정을 배우고, '이런 실수는 어떻게 하면 반복하지 않는다'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꾸준히 배우고, 또 실패하고, 또 배우고. 그 과정이 정말 중요해요.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 라는 말에는 항상 내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연구자는 항상 배우는 자세로 가야 합니다. 어린 학생들에게서도 배워야 해요. 데이터가 생각하는 것만큼 안 나오고 반대로 나왔을 때, '내가 실수했나, 실험을 잘못했나'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이것도 결과일 수 있는데, 왜 이렇게 나왔을까?' 그렇게 파고드는 탐구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해요.


저희가 실험하다 보면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 그게 정답이었던 적이 종종 있어요. 그동안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었던 거죠. 그런 발견을 논문으로 내기도 했어요. 이상하다고 그냥 넘기지 않는 자세, 그게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건 연구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영주의 청년들에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준비하고 있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A. 은퇴가 대략 5년에서 9년 정도 남았는데, 남은 시간 동안 제가 평생 배우고 축적한 과학적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온전히 환원하고 싶습니다.

 

또하나 제가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왔던 꿈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사회적 기반이 가장 취약한 미혼모와 미혼부들의 자립을 돕는 일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들이 당당히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고용 창출형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멘토링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들풀 속에서 진주를 찾아내는 천연물 과학의 길을 걸어왔듯,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곳에서 빛나는 가능성을 찾아내 꽃피우는 진정한 사회의 연구자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김수남 박사와의 인터뷰는 한 편의 따뜻하면서도 강렬한 대서사시를 읽는 듯했다. 유교적 정서가 유독 강한 소백산 아래 영주에서 성장해, '여자는 학위 줄 필요 없다'는 학계의 모진 성차별의 냉대를 집념의 연구 실적으로 정면 돌파해 낸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후배 과학자들의 훌륭한 귀감이 된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빨간 양산을 쓰고 강원도 논둑을 누벼 기어코 수염가래꽃 국산화에 성공한 그의 일화 속에는 과학자의 집념이, 은퇴 후 미혼모의 자립을 위한 일을 계획하는 그의 모습에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넘쳐흐른다. 보수적인 시대를 향해 당당히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 낸 김수남 박사. 그가 규명해 낼 또 다른 들풀 속 치유의 메커니즘과 그가 그려갈 사회적 공헌의 제2막이 기대된다.

더영주 김소영 기자 (iybc365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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